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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예덕선생

작성자 : 이영미 (IP: *.222.101.234)    작성일 : 2021-04-02 09:16   읽음 : 416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마틴 루터킹은 말했다.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주워주지 않으면 병이 창궐하기 때문에 병을 고치는 의사와 청소부의 노동은 동일하게 존엄하다.”

지난 한 해, 수 개월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를 했다. 교회는 애당초 농업창고였던 곳이다. 시멘트 바닥에 얼크러진 전선들과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 그리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며 쥐똥, 곰팡이로 퀴퀴했다. 창고였다 하더라도 처음 지을 때부터 잡동사니가 차지했던 것은 아니었겠으나, 각종 연장이며, 작업화, 철마다 나오는 농산물까지 창고 안에서 시들고 버려지다 보니 마치 두엄더미를 곁에 둔 듯했다.

그곳에서 예배를 보면서 갈등이 많았다. 내적으로 최고의 학문적 성취를 이룬 목사님이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주거 철학에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존경하는 마음에도 상처가 생기는 듯 했다. 몇 년을 벼른 끝에 어렵사리 동의를 얻어 청소를 시작했지만 여기저기서 얻어 온 낡은 가구를 버리는 일부터 부딪쳤다. 예배를 보러 갈 때마다 조심스레 한두 가지씩 변화를 시도했고, 청소의 주도권을 겨우 얻어 낼 때까지는 여러 달이 걸렸다.

혼자 비용을 충당할 수가 없어서 돈을 들여 리모델링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쓸고 닦아도 버리지 못한 물건이 장소만 바꿀 뿐, 여전히 겹쳐있어서 그것을 들어내려면 바닥 공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크게 마음먹고 강화마루를 시공했다. 모든 물건은 밖으로 나왔고, 다시 들여놓을 심산으로 멀리 내다 놓지 못한 짐들이 마당을 채웠다. 유튜브로 정리정돈 전문가의 실제 사례를 계속 시청하면서 버려야 할 것을 타협했다.

다행히 당근 마켓에서 여러 개의 책장을 사고, 더러는 무료 나눔의 혜택으로 쓸 만한 책장들을 들여왔다. 무더기로 쌓여있던 책이 정리되니 벽면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서고가 되었다. 영국 유학 시절부터 지녀온 목사님의 귀한 책들이 오랜 푸대접 끝에 제 자리를 찾은 듯했다. 덩치가 크고 낡은 가구들은 버려서 가능하면 공간을 확보했다. 쓰레기 더미를 연상케 할 만큼 물건들로 가득 찼던 방을 과감히 모두 비워내고 긴 테이블과 의자만으로 예배실을 따로 만들었다. 기적을 보는듯했다. 낡은 수건을 기증해준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구며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실내에서 나간 허드레 가구와, 쓰러져 가는 몽골텐트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힘으로는 역부족이어서 일꾼들을 샀다. 장정 두 사람이 달려들어 쉼 없이 쓰레기들을 멀리 야적장에 쌓고, 땔감은 정리하여 한쪽에 모아두었다. 엉킨 나무는 자르고 뒤꼍 잡풀도 뽑고 시야를 가로막았던 텐트도 철거했다. 가을걷이와 겹쳐서 어지르고 치우고를 반복하며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청소가 첫눈 오는 날 끝을 보였다. 눈 덮인 마당을 보니 천사의 옷자락처럼 느껴졌다.

난롯가에 앉아 군고구마를 먹으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을 마주했다. 쓰레기더미에 가려져 있었던 석양이 이제는 매일 찾아올 것이다. 멀리 눈 내린 들판도 보일 것이고 봄에는 작은 꽃도 보일 것이다. 사모님은 마당에 꽃씨를 뿌릴 생각으로 들떴고, 무엇보다 낡은 물건을 집안으로 들이려는 목사님의 마음이 이번 여름에 조금은 치유된듯하여 기쁘다고 했다.

코로나로 갇혀 지내던 지난해, 우리 세 사람은 청소를 통해 각자의 기도를 한 셈이다. 똥 푸는 사람에게 예덕 선생이라 불렀던 연암 박지원이 떠올랐다. 어떤 경로로든 오물을 치우고, 청소를 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흙먼지를 잔뜩 묻히고 난로 속으로 사라져간 수건 덕분에 바닥은 차츰 환해지고 있다. 이젠 실내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실내화로 갈아 신기를 권하고, 난롯가를 수시로 걸레질하며 티끌을 치우시는 목사님 음성이 한결 밝아지신 듯하다. 의사가 다녀간 듯하다.

출처 : 충청일보(http://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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