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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우산 살

작성자 : 가수진 (IP: *.222.101.234)    작성일 : 2022-03-30 09:16   읽음 : 375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시니어 프로그램에 과감히 도전했다. 키가 작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모델’이라는 단어 앞에서 체면이고 염치고 버리기로 했다. 백석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 모델 아카데미. 자격은 나이뿐이었다. 노인의 나이에 도달했기에 주어진 수강 자격은, 나이에 밀려서 잃었던 수많은 기회를 보상이라도 할 듯했다. 낯선 프로그램, 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키가 크고, 마르고, 멋진 옷을 입고 참여한 사람들도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자세 교정을 하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심각한 질병을 앓고 나서 생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싶어서 나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참여한 수강생들과 유대감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그램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웨이에서 걷는 연습을 하는 것도 벅찬데, 뮤지컬 시카고의 한 대목인 ‘올 댓 재즈’까지 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좋은 자세도 배울 겸 한 주에 한 번 정도의 연습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프로그램에서 갈등이 생겼다. 그렇다고 이미 팀이 짜인 상태에서 중도 포기를 한다는 것은 더 난감한 일이었다. 더구나 천안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릴 계획이 있다는 말에 당면한 몇 가지 문제들을 뒤로 미루더라도 ‘예술의전당’ 무대에 설 기회를 얻고 싶어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주말에도 몇 명이 모여 따로 자발적인 연습을 하게 되었다.

평소 신지 않았던 높은 구두를 신고 걷는 연습을 하고, 춤을 추고, 점점 살이 비치는 야한 옷으로 무대 복장이 바뀌면서 그날을 맞았다. 저녁 7시 공연인데 새벽 7시부터 예술의 전당에 모였다. 무대화장을 하고 나서 아름답게 변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두상에 맞게 고정한 올림머리, 잔주름을 거의 가린 피부화장, 숱이 짙은 긴 속눈썹에,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눈화장, 크게 그려진 붉은 입술, 경극 배우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에 반한 시니어들이 순간을 남기려고 삼삼오오 사진찍기에 열중이다.

무대 전체를 고려한 각자의 의상 선택으로 조화를 이루고자 했고, 서로의 복장을 보아주면서 팀워크를 다졌다. 런웨이가 끝나고 오페라 한 곡을 부르는 사이에 다시 옷을 갈아입고 시카고의 ‘ALL THAT JAZZ’ 음악에 맞추어서 결전의 무대를 만들었다. 망설이느라 두 개, 세 개 무용복을 가져왔는데 가장 섹시하고 노출이 심한 옷으로 마지막 결정을 했다. 변장의 효과이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긴장하면서도 관객이 숨죽이고 우리의 공연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의 본성이 재즈 음악을 타며 즐겼다.

화려한 무대가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우리를 바라보는 담당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공연의 초보자인 우리가 멋진 무대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평범한 우리의 표정을 무대 표정으로 바뀌도록 개인별로 가르쳐주고, 동작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주고, 동분서주했던 스텝들의 수고가 그제야 보였다. 백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위해 교수님과 스텝들은 수면 아래에서 완성된 무대를 그리며 치열하게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 우리에게 쏟아진 찬사는 그들의 등을 업고 우뚝 섰다. 객석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면 그 순간을 향한 수많은 사람의 노고도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우산 안에서 보아야, 덮개 부분을 얽어 받쳐주는 탄탄한 우산살이 보이듯, 백조의 아름다운 유영에는 반드시 물속의 물갈퀴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공연을 통해 또 절감했다. 카톡 사진을 환하게 장식할 한 장면이 그렇게 많은 이들의 수고로 만들어졌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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