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커리어잡스

칼럼

Home > KCJ NEWS > 칼럼

[유인순 칼럼] 다시 보는 뉴욕 타임스 부고기사

작성자 : 가수진 (IP: *.222.101.234)    작성일 : 2022-03-30 09:11   읽음 : 381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1919년 봄 (한국 독립운동을 위한) 평화 시위에 동참하라는 요구가 있었을 때 한 여학생은 자유를 염원하는 민족 전체의 갈망을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 유관순은 1919년 3월 1일 한국에 대한 일제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7세에 감옥에서 타계한 소녀는 국민 영웅이 되었다.

1851년 이래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면은 백인 남성들에 관한 기사가 지배적으로 많았다. ‘우리가 간과한 사람들’ 면을 통해 뉴욕타임스는 주목할 만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유관순은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한국 여성을 위한 첫 현대 교육기관인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다. 1919년 3월 1일 유관순과 4명의 급우는 거리에 나가 일제 식민통치에 항의하기 위한 최초 시위 중 하나였던 만세운동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다른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가운데, 출판인 최남선이 작성하고 33명의 한국 문화 및 종교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발의한 3.1 독립선언서가 서울 탑골공원에서 낭독되었다. 다음날 시위 주도자들은 이화학당에 찾아와 유관순과 그녀의 이화학당 학우들이 사흘 후에 진행될 학생 시위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3월 5일, 유관순과 그녀의 급우들은 서울 남대문에서 행진했다. 이들은 일본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지만, 이화학당의 선교사들이 학생들의 석방을 협상해 풀려났다. 재빨리 보복에 나선 조선총독부는 3월 10일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유관순은 몰래 입수한 3.1 독립선언문 사본을 들고 자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85km 떨어진 충청남도 천안으로 돌아갔다. 유관순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말 그대로 3월 1일에 진행된 독립운동 시위를 의미하는 ‘3.1 운동’을 전파하며 주민들을 결집하여 자체적으로 항의 시위를 주도할 것을 독려했다. 독립운동은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에 3,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관순도 그 현장에 있었다. 집에서 제작한 태극기를 나눠주며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일제 헌병대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을 겨냥해 총을 쏘았고 19명이 사망했다. 유관순의 부모도 사망했다. 몇 주 후 일제 당국이 독립 시위 운동을 진압했을 때까지 2천만여 인구 중 약 2백만 명이 1,542개의 독립운동을 위한 거리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한국의 역사’ 저자 김준길은 추산했다. 7,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유관순을 포함해 약 4만6,000명은 투옥되었다.

선동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후 유관순은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은 다른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대한민국 독립을 촉구한다는 자신의 변치 않는 태도를 계속 표명했다. 일제 교도관들을 향해 소리쳤고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3.1 운동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시위를 준비했다. 그녀는 투옥 중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으깨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써놓았다. 또한 “내 나라에 내 목숨을 바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회한입니다”라는 발언도 남겼다.

결국, 지하 독방으로 이송된 후 유관순은 독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구타 및 고문을 당했다. 1920년 9월 28일 17세 나이에 부상으로 사망하기 얼마 전 그녀는 “일본은 패망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은 2018년 3월 28일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의 번역본이다. 전체 내용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글을 옮기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아시아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인물’로 주목하여 선정한 것과 2019년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대한민국장으로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상향된 것, 그리고 뉴욕이 3월1일을 유관순의 날로 제정한 것 등이 숨 가쁘게 진행되는 듯했다.

올해 백한 번째 유관순 열사의 추모식을 먼발치서 참석하면서 부고 기사를 다시 보고 다짐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잊지 말아야 할’ 유관순 열사를 위해 세계적인 뉴욕타임스가 다시 시작한 역사를 이제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식으면 안 된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NO SUBJECT NAME DATE HIT
108 [유인순 칼럼] 투르게네프의 언덕 가수진 22-03-30 552
107 [유인순 칼럼] 조율 가수진 22-03-30 462
106 [유인순 칼럼] 금을 받았습니다 가수진 22-03-30 405
105 [유인순 칼럼] 우산 살 가수진 22-03-30 375
104 [유인순 칼럼] 아기는 취약 계층입니다 가수진 22-03-30 379
103 [유인순 칼럼] 입술을 보여주세요 가수진 22-03-30 364
102 [유인순 칼럼] 다시 보는 뉴욕 타임스 부고기사 가수진 22-03-30 382
101 [유인순 칼럼] 버리고 떠나기 혹은 느려지기 가수진 22-03-30 391
100 [유인순 칼럼] 베리 굿 김민지 21-08-12 423
99 [유인순 칼럼] 은광연세 김민지 21-08-12 43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