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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버리고 떠나기 혹은 느려지기

작성자 : 가수진 (IP: *.222.101.234)    작성일 : 2022-03-30 09:07   읽음 : 391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7년 동안 제구실을 못하던 남편의 차를 팔았다. 지하 주차장 출입구 바로 앞, 가장 편안한 자리에 늘 마네킹처럼 고정되어 있던 그 차는 한 달에 한두 번 시험 운전을 하는 것으로 성능 테스트를 할 뿐이었다. 어쩌다 시내 볼일이 있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시내 번잡한 곳에 주차장이 마땅치 않아 버스를 타고 다녔고, 멀리 부모님 산소에 갈 때는 연료비가 덜 드는 내 차를 주로 이용했다.

바쁘게 일하고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주차장을 몇 번씩 돌아야 할 만큼 아파트 주차장이 비좁은데 먼지까지 쓰고 요지부동으로 입구에 버티고 있는 그 차를 보면, 때로는 민망하기도 했다. 비싼 외제 차에 커버를 씌우고 한자리에 장기 주차하는 차도 있고, 식구수대로 세대, 네 대씩 있는 집들도 있지만 필요에 의해 있는 것들이라 짐작해 외면하기로 했다. 

내게 차는 바로 신발 같은 것이어서 집밖을 나설 때는 늘 이용하게 된다. 바쁘다보니 버스를 타거나,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일도 하지 못했다. '타이어 신발보다 싸다.' 이런 광고에 동의 했다. 승용차는 얼마나 많은 시간, 많은 거리를 나와 함께 하는가. 게다가 사무실 역할까지 해주는 승용차 덕분에 코로나 시대를 씩씩하게 달리고 있다.

그러나 교직에서 퇴직한 지 7년이 지난 남편의 일상은 천천히 느려지고 있었다. 시원을 떠나 가파르게 계곡을 흐르고 도시를 적시고, 이제는 넓은 강을 지나 바다로 안기는 물처럼 유유자적 했다. 매일 규칙적으로 주변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집 앞 마트를 두고, 일부러 멀리 재래시장까지 버스 타고 가서 푸성귀도 사고, 과일도 사고, 선짓국 같은 것도 가볍게 사 들고 오는 걸 즐긴다. 불티 닫듯, 여기저기 차를 몰고 다녀도 숨이 헐떡이게 바빴던 젊은 날들이 그에게도 있었지만, 이제 칠순이 되니, 운전면허 반납까지야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세금을 안고 있는 낡은, 차를 주차장에 모셔두는 것은 여러모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과속하는 차를 향해 '그렇게 바쁘면 어제오지 그랬슈' 라는 현수막을 곁눈으로 스치며 '어제도 바빴슈'라며 키득거리던 나 자신도, 이제는 때로 5030속도 제한 구역에서 편안해진다.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미리 출발 한다. 남편처럼 나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운전대를 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아쉬움으로 내 기능이 남아 있을 때, 봉사 한다는 마음으로 어딜 가든 '기사'를 자처한다. '앞으로 딱 5년만 내가 운전하고 그 다음 부터는 신세 좀 질께' 그러면서 연장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에 미안해하는 후배들에게 '보험'이라고 말한다. 먼저 나이 들어가는 남편을 통해 신체의 기능이 유한하다는 것을 배운다. 

 중고 매매센터에서 차 값으로 80만 원을 받았다. 십 수 년을 우리와 함께 했던 그 차의 빈자리에 맑고 푸른 하늘이 들어왔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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