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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조개혁평가가 한창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란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하면서, 동시에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다. 교육부의 표현에 따르면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으로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결국 교육부가 제시하는 지표에 맞추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뜻과 같다. 우리나라 대학의 대부분이 사학(私學)인 터라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대학은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예컨대 '교사(校舍)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부랴부랴 건물을 짓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내 일자리를 늘린다. 꼼수의 향연이 벌어진다. 대학이 '교육부의 지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정작 대학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등록금으로 근근이 운영하는 대학이 부지기수임에도 말이다.
촌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관련된 것 외에도 대학 문제가 수두룩하다는 게 더 촌극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아직 대학에 머물러있다 보니 안타까움과 분노는 배로 크다.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는 것도 답답함을 키운다. 책 <진격의 대학교>를 쓴 오찬호 역시 같은 마음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책에 쏟아낸 분노가 느껴졌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 아니 무책임한 정부 탓!
<진격의 대학교>에서 언급한 내용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취업사관학교'로 변해버린 대학, 살아남기 위해 기업화를 선택한 대학, '죽은 시민'을 만들어내는 대학 등등…. 많은 사람이 꼬집고 있는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현재 대학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 <진격의 대학교>의 부제처럼 모두 기업의 노예가 된 탓인가. 이 지점은 되짚어봐야 한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지금 대학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은 '징후'이지 '원인'은 아니다. 지금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촌극의 책임은 기업논리 혹은 시장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게 자신의 의무를 떠넘긴 무책임한 정부에게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70.9%다. 이는 83.8%로 최고점을 찍었던 2008년 대학 진학률에 비해서는 떨어진 수치이지만 다른 국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현상을 두고 기업이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단순 해석하는 것은 1차원적이다.
여타 선진국의 사례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몇몇 사업으로 생색만 내고 있을 뿐 취업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원금이라는 알량한 무기를 휘두르며 자신의 의무를 대학에게 대신 지우고 있다.
대학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취업률을 비롯한 요구지표를 상승시키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하위 대학은 퇴출시킨다지 않는가.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다. 대학이 나서 기업에 빌붙지 않으면 취업률은 올릴 수 없다.
물론 등록금으로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대학은 퇴출당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도 정부의 무책임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학 비리'에 미온적인 태도다. 대학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는 사학이 아직 곳곳에 넘쳐 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사학 비리 재단을 쫒아냈다 싶으면, 얼마 후 다시 재단 이사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한 판국이다.
"'시대의 조류'인 변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 문제는 개인이 정신을 차린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개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146쪽)"
인문학이 죽어나고 관련 학과가 없어지는 현상의 끝에는 정부의 책임 회피가 자리하고 있다. 취업난은 전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대학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과 협상해 대학 졸업장이 취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의무교육만 이수해도 취업에 불이익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학생은 잘못이 없다
"인문학은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아프게 들춰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보아도 이득이다. 어차피 인문학 많이 안 한다. 많이 한 적도 없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모든 학문의 으뜸이었던 철학을 세상이 멸시하는 것에 대해 한탄한 게 1781년이다. 이는 순수학문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81쪽)
대학은 본질적으로 대중의 지향과 어긋나는 집단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본질과는 반대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달이다. 학생 충원율, 취업률 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본질과 다른 길을 가다보면 끊임없는 장애물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졸업장을 얻기 위한 대학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수강신청을 앞두고 대학 커뮤니티에는 강의 후기를 부탁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중략) 학생들은 객관식, 단답형, 약술형으로 평가하는 강의를 찾는다. 이때 동반되는 설명이 기막히다. '외운 것만으로 정직하게 점수를 받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장되는' 강의라는 것이다. 아니 그럼 논술형 시험은 사기꾼이 채점한다는 말인가?"(207쪽)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올 필요가 없는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을 원하는 이가 굳이 대학에 와서 생고생을 하고 있으니 '객관식, 단답형, 약술형'으로 평가하는 강의를 찾을 수밖에.
장기나 바둑으로 치자면 외통수다. 대학생은 별 다른 수가 보이지 않으니 남들이 하는 거라도 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기업은 얼씨구나 쾌재를 부르며 높은 스펙을 요구한다. 여기에다 각종 스펙을 제공하는 여러 업체가 끼어들어 대학생을 착취한다. 대학생은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부모가 건네준 큰돈을 주고 백화점에 드디어 입성했을 때 무엇을 사야 할까? (중략) 지식 백화점에서는 취업시장에서 교환가치가 높은 실용적 지식을 사야 한다."(173쪽)
현재 대학생의 대부분은 사실 대학생이 아니다. 대학 졸업생이라는 명함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대학생이 영어에 집착하고, 효율성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정치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 돈 내고 졸업장 따러 간 것이지 지성의 전당에 한 수 배우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금을 지불하고 가장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작금의 대학생 아닌 대학생에게 누가 침을 뱉을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요즘 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민주주의가 훼손당한 사건에는 무관심하지만, '너 요즘 살찐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에는 깜짝 놀라 즉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한다(247쪽)"고 지적하기에는 성급하다.
다시 대학이다
<진격의 대학교>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논의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에게 겨눠야 한다. 당연히 지켜야할 의무는 방기한 채 대학에게 모든 것을 미뤄놓은 것을 지적해야 한다. 대학의 본질을 해치는 대학 아닌 대학을 내버려두는 것에 일갈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의 본질은 어긋남에 있다. 현실에 영합하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끊임없는 어긋남을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관이다. 대학의 지향은 미래를 향해 있고, 현재와의 어긋남에서 미래로 향하는 동력을 얻는다. 또한 어긋남 속에서 새로운 것이 튀어나온다. 대학은 어긋남을 통해 세계를 퇴행이 아닌 진보로 이끄는 '공적' 기관이다.
대부분의 잘못은 초심을 잃은 데서 온다. 새로운 제도는 모두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중에 탄생한다. 그러한 제도가 사회에 정착하고 오랫동안 운영되다보면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곪아터질 때까지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조기에 발견해 문제점을 걷어내고, 최초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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