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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진지 잡수셨어요?

작성자 : 김중환 (IP: *.222.101.234)    작성일 : 2019-04-24 08:51   읽음 : 642

말을 배우고 나서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항상 손을 모으고 ‘진지잡수셨어요?’ 그렇게 인사를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그게 그냥 인사말인줄 알았다. 일어나면 집안에서 만나는 어른들께 ‘안녕히 주무셨어요’로, 밖에 나가면 ‘진지잡수셨어요’로, 대답을 요하지 않는 질문을 했다.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거로 그 말은 좋은 덕담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기초적인 욕구, 먹고 자는 일이 누구에게나 걱정이었던 시대를 지나 이 만큼 왔다. 옛날얘기를 할라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라고 입을 막는다.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시절이었으니 그랬고, 지금은 세월이 다르다는 것이다. 세월이 달라진 것은 맞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단식을 하거나, 미용과 건강을 위해 스스로 금식을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진지 잡수셨느냐는 인사말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먹고사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로 남아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직업을 통해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기초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사람에게는 문화와 여가, 지적인 자기 계발과 다양한 성취 등을 대부분 직업을 통해서 얻어낸다. 그래서 직업은 ‘진지 잡수셨냐’고 인사하던 시절의 욕구와 다름없이 간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직업은 개인이 계속하여 수행하는 경제 및 사회 활동의 종류를 말하고, 그런 직업 활동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회적 역할을 분담하고, 일의 분야에 따라 개인의 개성 발휘나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직(職)은 직분이라 하며, 관을 중심으로 행하는 직무와 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말하고, 업(業)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생계유지를 위해 전념하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은 계속적인 노동 활동이 수반 되어야 한다.

사십 대 중반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안 없이 덜컥 사표를 내고는 몇 년간 무직으로 지낸 시절이 있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몰랐던 사실이 하나하나 확인되었다. 생계유지는 계속되는데 통장에 잔액은 없고, 빚을 내서 쓰는 날이 길어지자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받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체득하게 되었다. 다른 회사를 두드려보니 채용하겠다고 선뜻 문을 열어 주지도 않았다.

수년간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공부하고 투자해서 교육원을 개설했다. 혼자 자영업을 시작 했었는데 사업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경제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먹고사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던 자만심이 바닥으로 내 팽개쳐졌던 시절이다. 깊은 골로 추락했던 상처를 여미는데 또 수년이 걸렸다. 오랜 시간 사업의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 했다. 그러면서 하나 얻은 게 있다. 밥 먹고 사는 일이 진정 쉽지 않다는 것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건, 자아 성취를 위해서건 직업이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소규모 사업장들이 흔들리고 있다. 왜 뜬금없이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어릴 적 인사말이 떠오르는지. 사장도 직원도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밥 먹고 사는 일은 무엇보다 위대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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