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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길은 변한다.

작성자 : 관리자 (IP: *.222.101.234)    작성일 : 2018-04-10 13:06   읽음 : 641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특별한 날의 기억은 뇌에 고이 저장되어 있다. 어느 해 늦가을에 함박눈이 펄 펄 내리더니 나무를 온통 뒤덮었다. 갑자기 눈이 오는지라 더디 가는 차들 틈에서 약속 시각에 늦지 않으려고 힐긋힐긋 눈꽃을 보며 일을 성사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맘 놓고 그 예쁜 것을 보리라 생각했다.

 마침 방문한 회사의 대표이사 방에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복사본이 걸려있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창가 풍경과 세한도의 풍경이 닮아 있어서 자연스레 이어진 눈 얘기로 시작한 계약이 뜻밖에 쉽게 성사되었다. 이렇게 눈 오는 날에는 어려운 계약이 체결된 것이 눈 덕분인 듯 반가웠던 십수 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다. 돌아오는 길에 보려고 남겨 두었던 풍경이 모두 사라진 황당한 경험을 다시 하고 싶은데 이번은 달랐다.

 통영으로 출발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보기 드문 눈풍경이다. 직원들은 지각했고, 차들은 비틀비틀 도로를 꽉 채웠다. 올해 들어 최고로 춥다는 뉴스까지 접하니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속도로 상황 앱을 살폈다. 대전 이남으로 100킬로 가까이 눈길 주의라는 정보를 확인하고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사가 통영에 있어서 자주 가는 편인데 승용차로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다. 그래도 둘이서 번갈아 운전 할 때는 피로감이 덜하지만 혼자 하루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할 때는 그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눈 때문에 하루를 기다렸다. 그러나 눈은 점점 더 거세지고 삼한 사온의 날씨답게 추위는 며칠 동안 누그러지지 않았다. 남쪽 지방에도 눈이 엄청 내렸다는 뉴스를 보고는 통영 일정을 아예 접었다. 통영을 가려고 비워 놓았던 일정으로 다른 일정들이 메워졌다. 여전히 이면 도로는 얼어있다.

 길을 본다. 그 길에 빗발이 거세게 칠 때도 있고, 눈보라로 중앙선이 안 보일 때도 있다. 마른 먼지가 날리기도 하고 비가 온 후 말끔 하게 씻겨 화사할 때도 있다. 그 길로 매일 다니지만 길은 항상 변한다. 그 길을 지나는 차들조차 언제나 같은 출, 퇴근 시간이라도 앞뒤로 만나는 차들은 다르다. 길을 지나다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붉고 고운 석양을 만났다. 차를 세울 곳이 만만치 않아서 조금 지나 차를 세우니 그 장면이 아니다. 각도도 틀리고 그사이 해도 기울었다.

 그 길에서 그때 그와 마주친 사건이 교통사고다. 어떤 때는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 추돌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그 길 위에서 난폭한 운전자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여전히 길은 시침 떼고 있다. 911테러 당시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 항공의 사고 비행기 탑승 취소율이 다른 때보다 더 높았다는 글을 본 게 생각난다.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법, 눈길 운전을 피하려는 마음으로 3일째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계획대로 하지 못한 일이 걸린다.

 여전히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폭설 재난 문자가 깊은 겨울을 예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면 감쪽같이 마른 아스팔트가 낯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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