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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다. 지난 2월에 방영된 ‘1박2일 태극기섬’을 요즘 다시보기로 보았다. 자세히 보았다. 보고 또 보았다.
우리나라 항일운동 3대 성지가 함경북도 북청, 부산 동래, 전남 완도의 소안도라고 했다. 병천 아우내 3.1운동이 국내 최대의 항일운동이 아니었던가? 3.1운동 하면 으레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를 중심으로 한 천안이 빠져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어디에도 항일운동 성지에 ‘병천아우내’는 없었다.
소안도, 가장 특별한 장면은 배에서 바라보는 항구였다. 소안항에서부터 마을 입구까지 1.3km 도로변에 대형 태극기가 일렬로 펄럭이고, 집집마다 빠짐없이 태극기를 높이 걸었다. 이 섬에서 태극기는 1년 내내 제 몫을 하면서 휘날리고 있다고 한다. 소안 항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표지석이다,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표지석이 주는 확실한 정보가 이 섬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항일운동 기념관에는 소안도가 배출한 89인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사진이 있으며 그중 20여 명이 건국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항일운동 당시 800여 명의 주민 대부분이 잡혀갔고, 동네 사람들은 그들의 고초를 생각하며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일장기를 게양하지 않고 끝까지 태극기를 고수했던 애국심의 근원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분들의 후손이었기에 지금도 태극기가 찬란하게 펄럭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안도 주민들의 집단 무의식이 부러웠다.
문득 병천면 유관순 생가지를 찾아갔다. 태극기가 걸려 있었는지 궁금해서이다. 근처 유관순열사 사적지와 생가지는 매봉산을 두고 지척에 있다. 사적지에는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소안도처럼은 아니지만,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그러나 생가에는 태극기가 없다. 동네 어느 곳에서도 태극기는 보이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불살라졌고, 살 곳이 없어진 유족들을 위해 1977년 지어주었다는 한옥도 지금은 닫힌 채 썰렁하다. 담 넘어 보이는 마루가 비에 씻긴 듯 트실트실하다. 오랫동안 여닫지 않아 삐거덕 거리는 대문에는 녹슨 자물쇠가 걸려있다.
예전에 유관순 열사의 후손들이 살았었다는 기와집에 다시 사람 소리가 나고, 열려있는 대문에 태극기가 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유모차에 기댄 노인을 길에서 만났다. 동네 길로 들어선 낯선 사람이 궁금하신지 말을 건네신다. 유관순 생가와 매봉교회만 겉핥기로 보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신다. 그러고 보니 작은 찻집이 있었던 흔적만 있다. 쇠락한 유관순열사의 생가 마을을 보면서 슬픔이 밀려왔다. 죽음과도 맞섰던 굳건한 정신은 100년 전에 사라진 듯, 초가집 안에 박제된 조형물만이 애국정신을 느끼기 위해 찾아준 몇몇 관광객을 맞는다.
소안도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조상을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한다는 표시로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2012년 30호로 시작한 태극기 달기 운동이, 2013년에는 1,500개의 태극기가 온통 휘날리는 섬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전 국민이 찾아오는 독립유공자 순례 답사지로 거듭나고 있다. 그 섬으로 들어가는 배의 이름조차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라지 않는가. 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소안도를 지켜왔기에 그 섬에 끌리는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생기 있는 마을이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그 섬, 소안도를 느끼러 가고 싶다. 가능하다면 유관순열사의 생가 마을 어르신들도 함께 보고 오시기를 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