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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 어머니를 파먹었습니다. 내가 아파 어머니를 울렸습니다.’ 이대우 시인의 시를 낭송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아직은 전문 낭송가가 아닌데도 자리를 만들어 주신 행사 담당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이 시인은 왼손 검지만으로 자판을 눌러 5번째 시집 ‘아침’을 펴낸 뇌성마비 시인이다. 이대우 시인에 대해 아는 만큼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스토리를 찾아보았다.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나, 학교라고는 가본 적도 없는 그는, 어린 시절 집에 놀러 오는 동생 친구의 명찰을 보고 한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왼손 검지 하나로 자판을 두드리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 시집 ‘나의 웃음 이야기’ 로부터 벌써 다섯 번째 시집 ‘아침’을 펴낸 것이다. 그의 나이 63세. 이 시인이 철들어서 겨우 깨우친 한글은 바로 시적 자산이 되었다.
시집을 받아 들고 낭송해야 할 시를 세 편 골랐다. 암송 기일은 일주일. 출판 콘서트에서 완벽하게 낭송하려면 여러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일단은 시를 필사해야 한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100번을 쓰면 어느 정도 암기가 되었다. 그다음은 본인 음성으로 녹음하고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시에 감정을 입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암송이 되어 녹음을 시작했다. 어머니라는 시를 녹음하면서 목이 메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반복 녹음하다가 중지하고 시인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소리 내어 실컷 울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먼저 보내려고 수면제를 먹이던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짐작할까? 그런데도 이 시인은 어머니를 사랑한다. 지극한 순애보이다. 자신을 낳기 전까지 ‘예쁜 우리 어머니’였던 어머니의 마음을 괴롭히며 살아온 세월에 대해 ‘내가 아파 어머니를 파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안해한다. 출판기념 행사 중에 이시인과 30년 지기, 40년 지기라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와서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러 주었다. 그때마다 휠체어에 앉은 이시인의 외마디가 크게 들려왔다. 웃는 얼굴로 보아 참 좋은가보다.
다섯 권의 시집에는 이 시인의 착한 마음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걷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말하고 싶고,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다는 평범한 욕구가 일생의 꿈이 되어 시 안에 녹아있다. 나에게는 간단하고 당연한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이 된다는 것을 잊고 살아온 듯하다.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이대우 시인의 눈빛을 마주했다가 외면했다. 그의 눈을 오래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누리고 있는 호사가 가당한지, 너무 미안해서다. 며칠 전부터 목감기가 와서 잠긴 목소리로 시 낭송을 하는 게 불편해, 이비인후과도 다녀오고, 뜨거운 물도 수시로 마시면서 목소리 조절을 위해 애썼지만, 낭송 당일에도 탁한 목소리는 여전해서 스트레스가 많았었다.
그날, 외마디 소리밖에는 낼 수 없는 이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수천수만의 음절을 대신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콕콕 찍어낸 그의 말을 대신한 내 음성은 어디서 빌려온 것일까.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던 목소리 값을 다만 얼마라도 지불하기 위해 이 시인이 도움을 받는 재단 ‘한빛회’전화번호를 찾았다. 조병화 시인이 생각났다.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온전한 목소리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작은 꽃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