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KCJ NEWS > 칼럼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 길을 걸었다. 여린 연둣빛 잎 아래에 검붉은 꽃이 매달려 있다. 갓 시집 온 새댁이 갖추어 입은 빨강 치마 초록 저고리처럼 싱그럽다. 잠깐잠깐 단풍나무 그늘마다 멈추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초록별이 뜬 것 같다. 바람이 불자 은하수처럼 별이 흘렀다. 제법 넓은 비탈로 오르면서 그늘을 따라 양쪽을 활보했다. 어떤 단풍나무는 별 사탕처럼 자잘하고 어떤 나무는 제법 잎이 너르다. 켜켜이 뻗은 잎사귀마다 색이 다르다. 여린 연둣빛부터 짙은 녹색까지 차례로 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대로가 어여쁜 꽃이다.
단풍나무 아래에는 어린 단풍이 이끼처럼 그늘에서 팔랑거린다. 수많은 씨앗이 떨어져 그대로 발아한 듯하다. 그러나 그 작은 단풍들은 어미 나무처럼 우뚝 서기는 힘들 것 같다. 오래되고 우거진 나무 아래에서는 아무래도 필요한 만큼의 햇빛을 받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보아도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본다는 말이 생각났다. 역사의 획을 그은 큰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이 만큼이나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콧노래로 편안한 마음을 그려냈다.
제법 땀이 났다. 단풍나무숲 길은 흑성산 자락 능선을 따라 3.2킬로 정도가 이어졌다. 군데군데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나무의자도 있고 허리 펴고 누울 수 있는 평상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땀을 들였다. 오월 첫날, 날씨도 좋고 신록도 푸르고, 현장 학습을 나온 아이들 재잘거리는 목소리도 피아노 건반에서 나는 소리처럼 청아하다. 근로자의 날인 줄 모르고 출근 준비했다가, 일찍 서두른 김에 선택한 오전 도보여행이 여유롭다. 늦잠보다 더 달콤하고 느긋하다.
이른 봄, 잎이 나기 전에 단풍나무과인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추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로쇠 수액으로 봄맞이를 했다. 나무가 들어 올린 물로 몸을 채우며 겨우내 정체되었던 활기를 불러 모았다. 유난히 단풍나무과의 수액이 달다 한다. 그 달착지근한 물이 잎사귀를 내고 초록의 광을 낸다. 그러고 보니 메이폴 시럽으로 유명한 캐나다는 국기에도 단풍잎이 그려져 있다. 단풍은 가을의 상징인 듯하지만 이른 봄부터 수액으로, 연두 잎으로 먼저 우리 곁에 와 있다. 라면 과자 속에 들어 있는 별사탕 모양과 어린 단풍이 닮았다. 달콤한 상상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러구러 하릴없이 숲만 바라보았다. 이 단풍이 모두 물들면 타오르는 불꽃같으리라.
수천그루 초록 잎이 하늘거리는 단풍나무숲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니 태극기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에 이르러 분수대 앞에 선다. 물보라가 시원하다. 땀 흘린 등줄기에 태극기 사이를 가로지른 서늘한 바람이 스민다. 태극기를 지나온 바람을 맞으니 내 몸에 결의가 새겨지는 것 같다. 오월 첫날,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 길에서 여유 있는 산책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정말로 봄에는 초록도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