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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시 외곽으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었다. 저수지의 사계절을 바라보면서 조금 느려도 좋을 삶을 배운다. 잠이 묻은 눈으로 현관을 나서도 아파트 앞 횡단보도에 이르면 명랑하게 반짝 깬다. 새벽에는 모두 걸음이 빠르다. 뛰는 이들도 있고, 경보로 엉덩이를 실룩이며 야무지게 팔을 흔들고 지나가는 이들도 있다. 작은 아령을 양손에 들고 그 속에 합류한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횟수를 헤아려가며 서너 가지 기구를 작동해 본다. 늘어진 팔뚝이 단번에 올라붙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얗게 얼었던 저수지에서 안쓰럽게 겨울을 난 오리가 아기 주먹만 한 새끼오리들을 몰고 수초 사이로 수영하는걸 보느라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어미와 새끼가 분별이 안 되는 모습으로 오리 떼가 무리 지어 물결을 일으킨다. 펄떡펄떡 뛰어오르는 잉어도 보고, 가끔은 허연 배를 드러내고 떠오른 물고기의 주검도 본다. 저수지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눈 덮인 못 가에 말라붙었던 연 대가 조그맣게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소나기를 피할만한 우산 크기로 연잎을 키워 올렸다. 기어이 바닥까지 드러낼 것 같은 가뭄이었다가도, 때맞춘 몇 번의 비로 다시 가장자리까지 찰랑거리기도 한다.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이지만 그 안에 사소한 생명들이 스러지고 살아나면서 저수지에 살고 있다.
매일 한 시간 정도의 걷기 운동으로 내 몸이 많이 편해 졌다. 마음도 편해졌다. 좋아하는 일은 자주 하게 되는 법, 휴일에는 해거름 녘에 다시 저수지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된다. 여명의 시간과 저물녘의 시간은 속도가 다르다. 마치 젊은 날의 시간과 초로의 시간이 다르듯이. 조금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들여다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본다. 그러다가 풍광 좋은 곳에 놓인 벤치에도 앉아본다. 행복하고 여유로운 노후를 설명하는 그림으로 본 적 있는 풍경이다. 선망했던 액자 속의 모습이 되어 멀리 아파트단지가 경쟁하듯 하늘로 치솟는 걸 낯설게 바라본다.
"그때는 참 예뻤지. 열정도 있었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때마다 필자는 손사래를 친다. 아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젊은 날이다. 어떻게 다시 그 삶을 살아 낼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들에 떨어진 불을 떨쳐버리려 발버둥 쳤던 날들이다. 차근차근 내 미래를 구상할 여유도 없었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못했다.
서투르게 농사를 배우던 시절 잡초가 악귀처럼 달라붙어 허구한 날 밭고랑에서 보낸 시간들. 온몸의 힘을 다 쏟고도 모자라, 진이 빠지게 허우적거리던 그 노동의 시간들을 감수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세상을 따라가느라 고통스럽게 공부에 매진했던 중년의 시간들 까지. 불붙은 터널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죽을힘을 다해 달려 나온듯하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참 다행이다"라는 말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걸 견디고 내게 다가온 예순의 나이를 사랑한다. 천천히 느끼고, 작은 보상에도 감사하며 행복하다. 불길을 빠져나온 이의 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