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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소고기 반근

작성자 : 이영미 (IP: *.222.101.234)    작성일 : 2021-04-02 09:11   읽음 : 438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퇴근길에 꽃집에 들어갔다. 생일 축하 꽃을 주문하고자 한다니, 받을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열여덟 살 소녀라고 했다. 꽃집 아가씨가 핑크색 꽃을 한 아름 안아 보이며 웃는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 저렇게 예쁜 여자애이었겠구나. 돌아가신 지 백 년이 지났지만, 영원한 소녀로 남아있는 유관순 열사의 가슴에 분홍 장미 한 다발을 안겨 보았다. 고문으로 한쪽 눈이 부은 수인번호 371, 그녀의 빛바랜 저고리 앞섶에서 분홍 장미는 가시처럼 필자를 찔렀다.

항거를 촬영한 여배우 고아성이 “성스럽고 존경스럽고 그 외 어떠한 감정도 느껴본 적 없는 한 사람을 표현 하였다.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고 인터뷰에서 말하였듯이 필자도 유관순열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에 무거운 마음이다.

1992년생 배우 고아성의 모습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영화 속 항거에서의 모습과 달리 천진하고 발랄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천연색 사진을 보니 장미보다 아름다웠다. AI가 합성한 유관순 열사의 화사한 얼굴을 떠올렸다. 낯설다. 용수를 벗기고 증명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듯, 필자의 기억에도 고문으로 입을 꼭 다문 그 모습으로 각인 되어 있었다. 그 표정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모습 때문에 그녀가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지난여름, 뉴욕에서 온 유관순 열사의 조카손녀가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주변 청과 상회를 검색하여 몇 차례 계절 과일을 보냈다. 격리자의 면역력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의 친정어머니에 대한 책임감이 더 무거워서다.

십 수 년 전까지 병천 유관순 생가에서 사시던 분인데 무릎 수술을 위해 서울 아들네로 올라가신 이후 내려올 수가 없었다. 시아버님은 유관순 열사의 남동생인 유인석님 이셨다. 새댁인 며느리 앞에서 늘 말씀 하시던 것이 있었다고 한다. 국가의 지원을 원하지 말고 스스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말로 ‘부모님이 피 흘린 값을 우리가 왜 받느냐’며 유족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원을 원치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살고 계시던 생가마저 국가에 헌납하셨다고 한다.

시집와서 늘 시아버님의 말씀을 들었던 터라, 번번한 집 한 채 없이 살 곳이 막막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아버님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생가는 천안시로 귀속되었고, 사시던 유족이 서울 간 이후 다시 내려오지 못한 채 십 수 년이 흐르게 된 것이다. 생가 내부는 잠깐 다니러 나간 주인의 짐이 그대로 먼지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조카며느리는 시집와서 아이들을 낳아 키우던 병천 고향 집에서 살고 싶었지만, 한 번 잠긴 문을 다시 열 수 없어 서울 변두리 임대 주택에서 옹색하게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의 후손이, 그것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유관순 열사의 후손이 어려움 속에서 살고 계시다는 것은 필자에게 깊은 상처이다. 뉴욕에 살면서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것으로라도 자손의 도리를 해야 한다고 믿는 열사의 조카손녀와 지냈던 지난 시간은, 남아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정표를 그어준 시간이었다.

유관순 열사의 오래된 생일날, 이른 아침 사적지에 가서 분홍 장미를 바치고, 서울에 계신 조카며느리께 소고기 반 근하고 미역 한 봉지를 배달했다. 도움을 원치 않는 그분의 심정을 헤아려 딱 마음만 보낸 것이다. 상도동 임대주택 좁은 부엌에서 미역국이 뭉근하게 끓고 있을 것이다. 섣달 차가운 감옥에서 맞이하셨을 어느 해 생일날을 떠올리며, 이럴 때 타임머신을 탄 배달의 민족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출처 : 충청일보(http://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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