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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추모의 날

작성자 : 김중환 (IP: *.70.54.65)    작성일 : 2020-11-07 07:34   읽음 : 509

[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처음으로 추모제에 참석했다. 돌아가신 지 100년이 지난 유관순 열사의 영정 앞에 서자, 송구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마음 한 번 준일 없이 스치듯 지나치던 곳이다. 먹먹한 마음으로 행사장을 바라보았다. 말끔한 가을 햇살이 흰색 차일에 내려앉았다. 행사장 뒷줄에서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추모사를 듣다보니, 눈 둘 곳이 없어 땅만 바라보았다. 잘 가꾸어진 잔디 마당 여기저기에, 질경이랑 잡풀이 새어 나왔다. 조만간 하룻날을 내어서 잡풀을 뽑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유관순 열사의 조카손녀를 만난 것은 뉴욕 광장에서였다. 뉴욕시가 3월1일을 뉴욕 기념일로 제정하고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했다. 그날 행사를 마치고 우연히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열사의 조카손녀를 보는 순간 깜작 놀랐다. 한복 안에는 반소매 셔츠가 전부였다. 유관순 열사와 흡사한 장신의 외모로 행사장을 온통 만세의 함성으로 이끌었고, 행사가 끝나고도 수많은 사람의 요청에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느라 두세 시간 이상을 칼바람 속에 서 있었는데 무명 저고리 안에 고작 반팔 면 티셔츠 하나뿐이었다니 걱정이 되었었다. 독감에라도 걸릴 것 같은 불안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솜을 넣어 누벼 만든 한복을 입고도 코가 찡하도록 추웠던 광장에서 그토록 매운 추위를 견딘 그녀가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유관순 열사의 후손이라 다르구나.

그리고 올해 초 우연히 유관순 정신계승 사업회를 방문하러 천안에 온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화장실에서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깊은 인연의 고리가 엮어졌다. 어쩌다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도 천안역에서 택시나 버스로 병천을 방문하고 바로 돌아가다 보니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늘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에, 방을 내어주고 운전기사를 자처했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잘사는 것이 뉘 덕분인지 아는 터이다. 필자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고마울 뿐이다.

유관순 열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밤늦도록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그녀는 생가에서 어릴 적에 할아버지랑 살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유관순 열사의 남동생인 유인석 할아버지가 생전에 하셨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박힌다. “왜놈들도 나를 박해했지만, 동냥을 하러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더 심하게 핍박해서 할 수 없이 금강산 쪽으로 도망가서 탄광에 다니면서 떠돌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야 고향에 발을 디뎠지” 순간에 고아가 된 여남은 살의 소년이 일제 치하에서 겪었을 고초가 상상되었다.

고생하며 살아온 할아버지는 나라에서 내려주는 보상금도 거절하셨다고 했다. “조상님들이 피 흘린 돈을 내가 왜 받느냐”며 거절하셨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도 돈을 받지 않았고 살고 있던 생가마저 국가에 반납 하셨다고 한다. 그야말로“집도 절도 없는” 상태로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가슴이 아팠다.

유관순 열사는 가족과 자신을 버리고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 하나만 생각하신 분이다. 그런 열사의 후손에게 우리는 얼마나 무심했었는지 부끄럽다. 십 수 년 간 비어있었던 생가에서 열사의 후손들이 다시 살게 되기를 바란다. 굳게 닫혔던 자물통이 열리고, 따뜻하고 깨끗하게 단장된 방바닥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싶다.

볕 바른 날, 추모각 뜰에서 잡풀을 뜯으며 백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그날의 함성을 느끼고 싶다. 백주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유관순 열사를 통해, 내 남은 삶의 여정을 확인한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출처 : 충청일보(http://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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