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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대표 칼럼] 청소당번

작성자 : 김보람 (IP: *.222.101.234)    작성일 : 2020-07-21 14:14   읽음 : 534

친정집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매달 유사를 정해가며 청소를 했었는데 지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집 창틀에 방풍털이 낡아서 가루가 날리고, 제대로 방한이 안 되어서 모헤어 교체 작업을 하기로 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코로나로 외부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 이었다. 칠 남매가 부부 동반으로 모이기로 했다. 열 명 이상의 일꾼이 작은 집에 들썩하게 모였다. 전문가처럼 창틀 모헤어 교체 작업이 진행 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창문을 떼어 비누로 닦고, 집 안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 내었다. 오래된 물건으로 가득하던 뒤꼍을 치우고 담장 아래에 기대어 있던 잡동사니들도 엄마 몰래 버렸다. 대문밖에 묵은 살림이 이사 가는 집처럼 쌓였고, 하나씩 집으로 다시 들고 들어가시는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작은 실랑이도 했다. 덕분에 집은 날아갈 것처럼 밝아졌다. ‘사람 손이 참 무섭구나!’ 엄두가 안 나던 일이었는데 한꺼번에 달려들어 새집처럼 만들어 놓은 칠 남매가 대견하신 듯했다.

팔순이 넘어도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몇 년 전 수술을 하시고 부터는 부쩍 기운을 못 차리셨다. 식사야 손수 해 드셨지만 주방이나 화장실 등이 예전처럼 깨끗하지 않았다. 가까이 사는 둘째가 자주 드나들며 청소도 하고, 반찬도 해드리고 돌보아 드렸지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찰 것 같았다. 매달 청소 당번을 정하기로 했다. 순서는 첫째인 필자부터, 날자는 그 달에 편리한 날을 정해 하루 청소하고 어머니 음식 대접해드리고,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순서를 까먹어서 한 달을 미루는 일도 생겼고,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흉내만 내고 가는 일도 있어서 다음 달 청소 당번이 지적하는 일도 생겨서 사이가 불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몇 년이 지나자 청소당번 뿐만 아니라, 각자 생일날에 어머니를 찾아와 맛있는 밥을 지어드리기도 하고, 선물을 드리기도 하고, 모여서 하룻밤 놀다 가는 일이 잦아 졌다. 칠남매가 번갈아 드나들다 보니 동네사람들이 어머니를 부러워하시는 눈치다. ‘젊어서 많은 애들 건사하느라 고생하더니 이제 호강한다’는 말로 어머니를 위로하신다. 음식 솜씨가 좋은 딸은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드리고, 꼼꼼한 딸은 주방 찌든 때를 닦아 내고, 살가운 딸은 엄마 손을 잡고 ‘하하 호호’하며 종일 말 상대를 해준다. 연장이 필요한 일은 아들이 유사할 때 살펴볼 수 있도록 메모를 남겨놓고, 어머니 텃밭도 갈아준다. 어머니가 안녕 하신지 칠남매가 돌아가며 소식을 전한다. 사진 속에는 늘 엄마의 따듯한 미소가 있다.

우리 네 자매는 요즈음 어머니 덕분에 자주 만난다. 딸이 복을 받아 잘 살고 싶으면 친정어머니께 온순하고 좋은 말씨로 대해드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동생들과 공유하면서 동생 형편이 더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청소 유사가 되었건, 생일 유사가 되었건 친정에 갈 때는 서로 함께 모이기를 청한다. 딸들이 모이는 주말은 시끌시끌하다. 가져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어질러진 것들을 치우고 닦는다. 주말 연속극 대사가 안 들릴 정도로 웃음소리가 담을 넘는다. 졸음을 못 참고 먼저 잠자리에 드신 어머니는 무슨 꿈을 꾸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