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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칼럼] 뉴욕에서 온 손님

작성자 : 김중환 (IP: *.222.101.234)    작성일 : 2019-04-24 08:54   읽음 : 844

우리가 처음 마주한 시간은 채 일 분도 안 되었다.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장인 뉴욕의 다그 함마르셀트 유엔광장에서였다. 누비 한복을 입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그녀에게 천안시에서 왔으며 혹시 한국에 나올 기회가 있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부부 건축사인 그녀는 남편과 함께 광장의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우리 일행의 사진을 몇 장 찍고는 행사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다음날 그녀는 행사장의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사진과, 뉴욕 타임즈 기사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천안에 오게 되면 꼭 우리 집에서 지내라는 말로 못을 박았다. 필자는 기념행사를 위해 맨해튼에 갔을 때, 여행경비가 부담이 되어 호텔에 머물지 못했다.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좁은 공간에서 신세를 지는 불편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덕분에 가져간 돈으로 미술관을 몇 군데 들러보고, 택시비를 하고,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생면부지의 이방인에게 대뜸 내 집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것 같다.

그녀가 한국에 왔다. 이화여고를 다녔기에 청년기부터 유관순 열사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고 했다. 뉴욕시에서 지정한 3.1운동 기념일,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상향 추진 운동에 재미 이화여고 동문의 활동이 열정적이었고, 그날 기념행사에도 유관순 열사의 동문 자격으로 참석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정을 조율하면서 가보고 싶은 곳을 보내왔다. 유관순 기념관, 생가, 매봉교회, 그리고 독립기념관을 보고 싶다고 했다. 건축가답게 아라리오 미술관, 리각 미술관, 예술의 전당, 박물관도 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4월 11일 3.1운동 백주년 기념 시 낭송 콘서트가 천안 박물관에서 개최되기에 그날을 포함해서 이틀 동안 함께 하기로 했다.

백석대 유관순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꽉 짜인 시간표를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미리 연락을 취해준 천안시청 유 팀장님의 배려로 학예사가 설명을 잘해 주었고 남편이 운전까지 해주니 시간 관리도 잘 되어서 더 많은 곳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논다’는 옛 말처럼 천안에 살면서도 겉으로만 훑고 지나쳤던 문화재에 관한 공부를 촘촘히 할 수 있었다. 거기 머무르니 그냥 지나쳤던 역사가 내 앞에 선연히 다시 섰다. 유관순 열사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바라보니 영화 ‘항거’의 만세장면이 오버랩 되어 손에 힘이 쥐어졌다.

천안에서 같은 일을 하는 건축사도 소개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화가의 작업장도 방문했다.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도 뉴욕에서 온 손님을 위해 함께 식사를 했다. 평범하고 소소하게 사는 내 집을 처음 보는 이에게 내어주면서도 단출한 살림살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 조상이 가졌던 집단 무의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선조들은 양반집 대문 앞에서 당당하게 ‘이리 오너라’라고 외치기만 하면 묵을 방을 안내받아 편히 쉬고, 때로는 노자까지 얻어서 길을 떠나지 않았는가. 호텔의 역사가 깊지 않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다.

기차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던 천안에서 손님을 머무르게 할 수 있었던 날, 내 방은 양반들이 내어준 사랑채가 되었다.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드는걸 보니 앞으로도 손님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더 쉬워질 것 같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 동안 묵은 청소를 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정돈된 방을 보니 좋다. 더 좋은 건 우리 동네에 그 며칠 벚꽃이 만개해서, 뉴욕에서 온 손님이 꽃동네로 내내 기억할 것 같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