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칼럼] 미안해하지마, 괜찮아요 작성자 : 관리자 (IP: *.222.101.234) 작성일 : 2018-04-10 11:59 읽음 : 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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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시골로 시집을 갔을 때, 집안에 새댁들이 많았다. 우리는 또래가 많아서 좋았다. 시어머니 세대와 며느리 세대에 생긴 벽을 또래집단의 힘으로 격려하며 넘기도 했고, 때로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같은 항렬뿐만 아니라 당숙모까지 이십 대이거나 삼십 대가 대부분이었던 그 시절에 젊은 우리의 주된 일은 농사일이었다. 농사도 직업이다 보니 직무에 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전업으로 농사짓는 사람과 부업쯤으로 적당히 텃밭에서 푸성귀나 거두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쨌든 농촌에 시집을 온 이상 누구도 농사짓는 일에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어머니가 가장 많은 칭찬을 한 분이 지금 직장암 수술을 한 사촌 동서다.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쉬는 날이나 출근 전 새벽에 그 많은 농사거리 다 건사하는 걸로 봐서 최고란다. 비교당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내 생각에도 억척스럽게 그 일을 다 견디어 내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필자 역시 신체적 조건을 모두 동원해서 죽도록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형님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다. 꾀를 부리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임계점에 다다르도록 일을 해야만 하는 게 농촌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식들 객지로 학교를 보내느라 전답을 처분하거나, 짝을 지어주고 집을 장만해 주느라 일부 전답을 처분하는 일이 있지만, 좀 더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그걸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노동으로 삶의 구간 구간을 해결한 형님은 세종시가 되고, 삼성전자가 전답 옆으로 확장되고, 농공단지가 들어오면서 보상을 많이 받아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도 결혼하여 제 몫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무렵 아주버님이 사고로 돌아가시자 사촌형님은 본인이 누리는 게 무엇이든 미안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유가 생겼어도 여전히 일을 손에 놓지 못하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고 한다. 배우자의 사망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 사건에도 자신의 몸을 추스를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자식들도 떠난 빈집에서 혼자 울었을 것이고, 남편과 함께 젊은 날을 보냈던 밭둑에서 그리움으로 애 닳아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도 풀어내지 못하고, 숨기고, 삭이느라 안으로 들어간 응어리가 암으로 자라고 있는 동안에도 마냥 미안하기만 했다는 형님에게 한마디 건넨다. "형님 이제는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제는 누리세요. 괜찮아요. 형님은 충분히 자격이 있어요". 어머니 간병을 위해서 일 년간 휴직을 한 공무원 조카를 보니 이제는 형님에게 제대로 보상이 시작되었다는 걸 느낀다. 형님이 그걸 받아들여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여유를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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