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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순칼럼] 바람을 가위질하다

작성자 : 관리자 (IP: *.107.36.233)    작성일 : 2016-02-24 17:14   읽음 : 1,175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오후 5시.

청주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려다 말고 활주로에서 주춤했다. 무슨 일인가 싶을 때 방송이 나왔다. 제주에 강풍이 불어 출발이 지연되고 있단다. 한참을 활주로에서 머뭇거리더니 웬만한지 이륙을 시도했다. 제주에 도착할 무렵, 어둠과 함께 기체가 흔들렸다. 바람이 분다 했으니 그럴 거라 짐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기체가 급히 하강했다. 급 하강 할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롤러코스터는 예상된 하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걸 즐기겠다는 필자의 도전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후회를 했었다.  

상상 그 이상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체험했다. 두어 번 더 급하강을 하는 기체 안에서 비명을 억제하는 것 이외, 자의적인 선택이 불가능했다.

좋은 생각만 하자, 비행기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 들었고, 바로 아래가 활주로인데 눈 딱 감고 5분 만 참아내자. 출발 시에 방송하던 기장 목소리가 나이 지긋해 보였던 것조차 위안으로 삼았다.

 제주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들은 지 수십 분 동안 비행기는 제주 상공에서 착륙의 순간을 엿보며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 공포의 시간이 아무리 짧았다 하더라도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이런저런 상상으로 행복했던 시간과 어찌 비교할 수있으리.

윈드시어 현상으로 착륙이 불가해 김해공항으로 회항한다는 방송에 저으기 안심이 됐다. 다시 광주공항으로 간다고 번복했지만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광주든 청주든, 발 디디기를 거부하는 사나운 제주 하늘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바퀴가 광주공항 활주로에 닿는 순간 몸에 힘이 다 풀렸다. 잠시 눈을 감고 죽음에 직면했던 공포를 떠올렸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예기치 않은 시간에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죽음이다. 이런 기적 같은 안전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고 살았구나 싶었다.

두어 시간쯤 지나자 염치없이 배가 고팠다. 선물용으로 마련한 호두과자를 꺼내 놓을까 말까, 여기서 누구도 요기를 한 사람이 없을 텐데 침샘만 자극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대여섯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목적지도 아닌 곳에 머무르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승무원에게 큰소리로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도 물론 보채거나 칭얼거리지 않았다. 예정 비행시간을 5시간 이상 지나는 동안 공포의 크기만큼 감사의 느낌도 커졌다.

수 십 미터 늘어진 택시 정류장에서의 기다림, 배고픔, 이런 것들이 평상시라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오겠지만 그런 것조차 감사하게 느껴졌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들이 왜 그렇게 너그러워지는지 알 것 같은 하루였다. 자정에야 비로소 국수 한 그릇으로 요기하면서 새롭게 주어진 하루를 기적처럼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각오에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바람을 낫으로 베어낸 '윈드시어'(wind shear)를 묘하게 피해, 살아남은 자의 자족한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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